개천예술제 창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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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예술제
개천예술제 창제자

내고 박생광 선생

화가

내고 박생광은 1904년 경상남도 진주에서 태어나 진주보통학교와 진주농업학교를 나왔다.
1920년에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교토[경도(京都)]의 다치가와 미술학원[입천산운 미술학원(立川酸雲美術學院)]에서 미술을 공부한 뒤, 1923년에는 교토시립회화전문학교 [경도시립회화전문학교(京都市立繪畵專門學敎)]에 입학하여 신일본화를 공부했다.

일본 유학 시절인 1923년에 선전(鮮展 :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가 주취하던 鮮展(조선미술전람회의 약칭)에서 처음 입선하였다.

1929년부터 일본의 명랑미술전, 신미술인협회전 등 여러 미술전에 출품하였으며, 1940년부터 1944년까지는 일본 미술원전에 꾸준히 작품을 출품하였다.

해방 직전에 귀국하여 곤양 다솔사에 출입하였으며, 광복 후 경상남도 진주시에서 청동다방을 운영하면서 자택을 문화의 중심지로 활용하였다.

광복 후 진주에서 개최되었던 백양회(白陽會) 창립전에 참가하였으며, 당시 진주지역 예술문화계의 중심인물로서 1949년에는 영남예술제의 창제자로 참여했다.
한국전쟁(6.25전쟁) 후에도 진주에서 꾸준히 활동하다가 1967년에는 홍익대학교와 경희대학교에 출강하기도 하였으며, 1968년에 상경하였다.

1973년에 개최된 ‘한국현대작가 100인전’, 1974년에 개최된 ‘한국원로작가 수작전’에 출품하였고, 그 해에 다시 도일하여 일본미술원전의 원우가 되었고, 이듬해 세 차례의 개인전을 도쿄[東京(동경)]에서 개최했다.
1976년에 개최된 ‘한국현대동양화대전’에 출품하였으며 1977년 서울 진화랑에서 연 귀국전은 왜색풍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으나, 1981년 백상기념관 개인전을 통해 독창적인 채색 한국화가로 각광을 받았다.
이후 경주 여행과 인도성지 순례를 다녀왔으며, 1984년에 개최된 ‘현대미술초대전’과 프랑스 파리 그랑팔레에서 개최된 한국미술특별전에 초대 출품하였다. 그리고 1985년에는 ‘한국미의 원초적 형상전’에 출품하였다.

대표작으로 「월벽」(1958년), 「밤의 매화」(1976년), 「무당」(1981년), 「무속」(1983년) 등이 있다.

1970년대 일본체류 시절 채색을 절제하고 그린 그의 작품들을 통해 신일본화풍의 영향을 받은 정교한 배치와 색면 분할적 화면을 엿볼 수 있는데, 1980년대에 새 안료기법을 개발하며 자신만의 채색화풍을 성취하기까지 복잡한 내면적 고뇌와 숱한 암중모색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화풍을 성취하기까지 한때의 왜색이라는 비난을 딛고 말년에 한국의 역사 및 민화, 무속화, 그리고 불화에 기초하여 한국 채색화 전통의 한국화를 새로운 영역을 연 진주출신의 대표적인 현대 한국화가로 평가된다.

1963년에는 경상남도 문화상, 그리고 1981년에는 제7회 중앙미술대상을 수상하였으며, 1985년에는 은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 2004년에는 내고 박생광의 탄생 100주년 및 서거 20주기를 맞아 서울, 수원, 창원, 진주, 부산에서 회고전으로 ‘박생광 특별전’이 개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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