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천예술제 창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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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예술제
개천예술제 창제자

청남 오제봉 선생

서예가

청남 오제봉은 1908년 경상북도 김천시에서 출생하였다.
불교전문대학을 졸업하고 출가하여 승문에 입문한 이래 서예에 정진하여 일가를 이루었다. 일제강점기의 진주지역을 대표하는 서예가로 경상남도 진주시 상봉동동 415번지에 있는 義谷寺(의곡사)의 주지로 있으면서 경향각지의 시인·묵객 등을 의곡사로 초청하여 무료숙식을 제공하는 등 예술가들에게 향토예술인 양성과 후원에 남다른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1946년 서울에서 조선미술동맹창립과 더불어 조선미술동맹 진주지부도 설립되었으나 극심한 이데올로기 대립으로 반발한 오제봉은 조선미술도맹 진주지부를 탈퇴하고 박생광(朴生光) 등과 경상남도 진주시 대안동 216번지 청동다방을 사무실로 하는 문화 건설대를 조직하였다.

1949년 11월에는 巴城 설창수, 乃古 박생광, 東騎 이경순 등과 함께 전국적인 규모인 영남예술제(현 개천예술제)의 발기인으로 참여하였고, 정명수, 정대기, 정현복, 강주식, 김창국 등과 함께 서예부문 행사를 주관하였다.

특히 예술인에 대한 오제봉의 지원은 진주를 예향의 도시로 거듭나게 하는 계기가 되었고, 설창수, 박생과으 조영제 등과 이러한 사업을 추진함으로써 진주의 예술 중흥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1963년에는 유명작가 초대전에 작품을 출품하는 등 예향도시 진주를 전국에 알리었고, 이후에도 개인전과 초대전을 개최하는 등 작품활동과전시회를 통한 시민의 정서함양에 열성적으로 노력하였으며 문화예술의 도시로 건설하는 데 앞장섰으며 일조를 하였다.

만년에는 부산으로 이거하여 서예실을 운영하다가 1991년 향년 83세의 나이에 별세하였다.

수상 및 유작의 대략은 국전문교부장관상 수상(1959년), 부산 눌원 문화상 수상(1963년), 부산시 문화상수상(1964년), 국전심사위원장 및 한국원로작가(1980년), 경남 진주 논래비문 액서(1960년), 진주촉석루[영남제일형승]액서(1960년), 합천 해인사, 동래 범어사, 곤양 다솔사, 고성 옥천사 등에 주련 및 액서가 남아 있고, 전국 각지에 유작이 많이 산재되어 있다.

1980년 [청남서예집]이 발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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